윤한덕 센터장의 아들 형찬 씨의 페이스북 캡처

민간인으로서는 36년만에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고(故)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아들 윤형찬 씨가 군 복무를 마친 후 아버지에 대한 회고와 앞으로의 다짐을 페이스북에 통해 밝혔다.

<다음은 윤 씨의 페이스북 전문>

전역도 오늘 했고 기쁜 마음에(?) 개인적인 얘기를 길게 써보려고 합니다. 군인 신분에선 뭘 해도 달갑지 않아서 ㅎㅎ

아버지가 며칠전 국가유공자(특별공로순직자)에 지정되셨습니다.

개인적인 얘기를 하기에 앞서, 국가유공자 지정 뿐만 아닌 여러 부분에 있어 도움을 많이 주신 분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정치나 이해관계를 떠나서, 국립중앙응급의료원 직원분들, 전남대 윤한덕후원회, 장한석 선생님, 허탁 선생님, 복지부 분들, LG복지재단, 롯데장학재단, ICEM, 대한의협, 청와대 관계자 분들, 뵀었던 여러 기자분들, 소식을 듣고 찾아오신 모든 분들, 친척들, 친구들, 그리고 가장 힘들텐데도 지금까지 모든 일을 챙기고 해내신 엄마, 너무 고맙다. 그리고 요새 열심히 사는 동생 형우도 ㅎㅎ

군인이었고 사회생활 경험도 없어서 이것저것 수많은 일들을 챙겨서 하는게 힘든 나였는데 여러 사람들이 다방면으로 도와주고 신경써줘서 무사히 일이 마무리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따로 언급한 두 분은 누구보다 자기 일처럼 끝까지 도와 주셔서 더욱 더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은 많이 모자라지만, 누구에게든 어떤 방식으로든 꼭 갚고 싶다. 덕분에 정말 생각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고 내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지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내 얘기를 시작하자면, 지금은 일상에서의 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 바빠서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로는 일년에 8~9번 정도 봤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일상에서의 허전함은 없는데 길거리에 다니는 응급차들, 응급실, 의학과 관련된 영화를 보면 생각이 많이 난다. CPR만 보면 가끔 눈물이 난다. 그런 광경들이 그를 생각나게 하는 트리거가 된 것 같다. 
언뜻 봤던 돌아다니는 글 들에서 부모님 살아 계실 때 동영상이라도 같이 찍어 놓으라는 내용을 봤는데 유튜브에 이름만 쳐도 영상들이 나오니까 그런 건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부분이 있다.

난 정말 솔직하게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90%이상 몰랐다. 그가 나에게 진지하게 자기 얘기를 한적은 딱 한 번이었고, 내가 기억나는 내용은 가끔 그의 지인 분들이 나에게 그를 정말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했던 것, 힘들어서 수년동안 몇 번이나 사표를 내려 했지만 결국 다시 일을 한다고 했던 모습이었다. 
사실 정말 아쉽긴 하다. 대학생이 되고 난 뒤로는 난 정말 궁금했었는데, 알지 못하니 그냥 잠 좀 많이 자고 취미생활도 하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었다. (+담배랑 술도 좀 줄이고) 나에게는 힘들다 거나 일이 어떻다 거나 얘기를 단 한번도 직접적으로 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가 주도해 도입한 닥터헬기나 다른 의료 체계 분야 단어들도 장례식 때 처음 기사로 접했다.

어떻게 응급의료에만 그렇게 매달릴 수 있었는지.. 나로선 정말 상상하기 힘들다. 어머니가 다쳤을 때에도 응급실이 바빠 보이니까 업고 다른 병원 찾으러 다녔던 적도 있었고, 돌아가신 뒤에 처음보는 마이너스 통장이 있길래 알아보니 회식이나 모임 때 법인카드 대신 개인 카드를 써서 생긴 통장이라고 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이런 얘기들을 들었던 그 순간에는 뭔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태어나서 올해 전까지 알고 있었던 내용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내용을 알게 되는 그 기분이 뭔가 슬프면서도 묘했다.

공대 전자과가 가고 싶었지만 반강제적으로 의대에 가게 된 일, 어린시절 방학 때마다 해남에 내려가 혼자 외롭게 노을이 지는 모습을 봤었던 트라우마, 세월호 현장에서 느낀 내가 상상치도 못할 감정들, 지금까지 여러 일들을 하며 받은 극도의 스트레스와 압박감들을 내가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했어서 너무 안타깝고 슬프지만, 어쩔 수 없었던 거고 아쉬움으로 남기려고 한다. 그걸 감당할 만큼 내가 지금 단단하지도 않고.

생각해보면 나와 닮은 점이 꽤 많았던 것 같다. 공감이나 위로를 주고받는 게 어색하고 받아도 도움이 안되는 성격, 뭘 해도 성취감이 오래 가지 않는 것, 여린 모습, 고뇌와 압박감 때문에 마음 놓고 행복하기가 힘든 성격, 무심하는 듯 하면서도 잔정이 많은 성격 등등. 나는 지금에서야 조금씩 나를 받아들이고 이상과 현실에서 오는 괴리감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고 있지만 여전히 배울 게 많고 아직 한참 멀었다고 느낀다.

요새 내가 여러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에 있어서 그의 그림자가 크게 진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안정적으로 여유롭게 벌면서 나와 내 주변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하면 만족할 것 같았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사실 아직까지 그것도 잘 못하고 있는 모자란 사람이지만! 
아직 경험과 생각이 짧기도 하고.. 공익과 애국이란 가치가 나에겐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천천히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편견없이 현상과 사람을 보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강요하거나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도록 하는 것이 내가 그에게 받은 가장 큰 가르침들이기에 난 내가 사랑하는 것과 가치관에 따라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그가 나에게 가장 바란 것은 내가 나만의 의미 있는 인생을 사는 거였으니까. 생각해보면 수능 원서 쓸 때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도 나에게 의대에 대한 얘기는 단 한마디도 안했던 기억이 난다ㅎ 너무 자유롭게 키워 주셔서 많은 시행착오는 겪고있지만^^ 그래도 좋다.

난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고 응원하기 때문에, 이번 국가유공자 지정에 있어 정말 의미 있다고 느끼고 행복하다. 내 생각과 무관하게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제일 기뻐했을 상이기 때문에 나에겐 가장 큰 의미로 다가온다. 
또, 그의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에는 직업이나 빈부와 무관하게 정말 좋은 뜻을 가지고 노력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정말 존경하고, 고마운 것을 잊지 않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둘 다 사후세계나 하늘나라나 이런 얘기는 딱히 믿지도 않고 좋아하지 않으니까 말하지 않겠습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지금도 저에게 있어 정말 큰 의미이자 축복이고 나이가 들며 점점 커지겠지만, 결국 우리 가족이 늘 그래왔듯이ㅎㅎ 내 답은 나 스스로 찾는 거니까 괜찮습니다. 나중에 제가 아버지 나이가 되면 그땐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안되긴 합니다. 여러 의미로 정말 큰 선물 주고 가서 너무 고맙고, 아버지가 바라신 가치가 발전 할 수 있게 항상 바랄게요. 정말 고생 많았어요. 저와 가족, 그리고 스스로의 행복에 대한 죄책감은 내려놓아요. 저도 노력할테니까. 당신의 아들이라 정말 행복합니다.

이 글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나의 회고이자, 살다가 가끔 뒤를 돌아봤을 때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한 이정표가 되길 바라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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